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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수 냉골, 능선길, 삼불사 답사후기1
by 홍고타미오 | 05/31 | 876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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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수 냉골, 능선길, 삼불사 답사후기

 이번 답사는 2017년봄학기 제12회 답사입니다. 그러나 남산연소 상설 코스인
"삼릉골"과 같은 코스입니다.삼릉골코스는 삼릉골을 왕복합니다. 이 코스는 선방(禪房)골을 하산하는데, 선방골 4사 선각여래입상만 추가입니다.
 그래서 한국 쪽 문헌에 없는 삼불사 이야기를 기술합니다.

 삼불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1940년 "慶州南山의 佛蹟"에 선방사(禪房寺)로서 등장했다. 거기에 1923년 당시의 현상을 쓰고 있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엣날 삼불사의 거의 전부이다.
 일제 시대 이야기를 초등학교 교장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郎)가 단편적으로 쓰고 있다. 오사카 긴타로는 1915년에 경주에 와다가 삼불사 불상을 보는 것이 1917년 가을이었다.
  '삼릉을 걸어간 때에 어린 지게꾼이 "불상이라면 여기 위이다"라고 안내를 했다. 안내를 받고 가보면 삼체모두 비참하게 때려눕혀 놓아 있다. 어린 지게꾼이 본존 석가불 얼굴을 재미스럽게 짓밟고, 이거야 라고 가리켜서 , 나는 놀라고 어린이를 몹시 꾸짖었다. '
  그 전에 다음 같은 기술도 있다.
  ' 이 석불은 삼체모두 최초는 현위치보다 동편에 산골짜기 가까이 넘어뜨려 되고, 절반이상 묻혀 있었다. 어쩌면 이 사지에 산소를 만든 자가 쓰러뜨리다라고 한다.‘
 1922년 가을에 일본 황족 간인노미야 고타히토(閑院宮載仁)가 경주를 방문했다. 경주문화원에 경주박물관 전신 고적보존회진열실(古蹟保存會陳列室)이 있었다가, 진열이 빈약했다. 그래서 오사카 긴타로는 이 삼체석불을 이송 전지하는 것을 경주군에 요청했다. 그때 군수 박광열(朴光烈) 씨는 고적보존에 부지런한 군수이었다. 박 군수를  위시하여 관계자가 자동차를 타고 현장에 갔다. 하지만 목조 다리 남천교(南川橋)가 썩어 있다. 불상들의 무게를 측정하다가 다리 통행이  위험한 때문에 운반 중지로 되었다. 다만 그 이후 고관이나 전문가가 내방했다. 그러나 불상들을 여정히 재건할 수 없었다.
기회를 겨누고 있으면 1923년에 조선총독 경주 시찰이 있었다. 오사카 긴타로는 미나미(南) 부처라고 쓰고 있으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부처이다. 박 군수가 사이토 총독부처에게 억지로 남산에 와 주었다. 사이토 하루코(齋藤春子) 부인가 먼저 ' 어머 얼마나 에처로워네요'라고 울며 부탁했다. 그 덕분으로 불상들을 재건할 수 있었다. 삼체불 보존 공로자는 박광열 군수와 오사카 긴타로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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