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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 수 비파골 답사 후기
by 홍고타미오 | 05/24 | 1051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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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 수 비파골 답사 후기

 이답사는 2017년 봄학기 제11회 답사입니다. 일기 비가 내리고 후에        흐림
△ 코스  비파마을(용장4리) → 비파골제1사지 → 비파골제2사지→    비파골제4사지(전불무사지)→ 비파골제3사지(전석가사지)→비파마을
○ 사진1 비파골제1사지 담장지(남산에서 유일)
  사진2 2사지 석탑
  
  비파골은 금오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삼국유사"에 '비파암' 그리고 '석가사' '불무사'의 기술이 있습니다. 비파골에서는 제1,2,3,4사가 있고 2사 석탑은 복원되었습니다.

  "삼국유사" 제5권 진신이 공양을 받다(眞身受供)
   장수(長壽) 원년 임진(692)에 효소왕(孝昭王)이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망덕사(望德寺)를 세워 당나라 제실의 복을 받들려고 했다. 그 후 경덕왕(景德王) 14년(755)에 망덕사 탑이 흔들리더니 안록산⦁사사명의 난(安史之亂)이 일어났다. 신라 사람들은 말했다.
  "당나라 제실을 위하여 이 절을 세웠으니 , 마땅히 그 영검이 있는 것이다.“
  8년 정유(丁酉 장수는 3년까지 밖에 없다. 장수7년에 해단하는 697년이 정유이다.)이 낙성회를 열어 효소왕이 친히 가서 공양했다. 그때 한 비구승이 있었는데 모습이 누추했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청했다(局束立於庭). 그는 "빈도(貧道)도 재에 참석시켜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왕은 그에게 말석에 참예하라 허락했다. 재를 마치려 하자 왕은 그를 희롱하고 비웃었다. "비구는 어디 사는가?" 중은 말했다. "비파암(琵琶巖)에 있습니다."
"지금 가거는 다른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 중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폐하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진신(眞身)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 몸을 솟구쳐 하늘에 따서 남쪽으로 향하여 가버렸다. 왕은 놀랍고 부끄러워 동쪽 산에 달라가서 그가 간 방향을 향해 멀리서 절라고 사람들에게 가서 찿게 했다.그는 남산 삼성곡(參星谷),혹 대적천원(大磧川源)이라는 곳에 이르러 바위 위에 지공이나 바리때를 농아두고 숨어버렸다. 사자가 우ㅏ서 복명(復命)하니, 왕은 드리어 석가사(釋迦寺)를 비파암 아레에 세우고, 불무사(佛無寺)를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에 세워 지팡이나 바리때를 나누어 두었다.두 절은 지금까지 남아 있으냐 지팡이나 바리때는 없어졌다.

경주남산연구소  05/26   
좋은 후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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