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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문화유적답사 ㅡ삼릉골코스
by 장백순 | 04/17 | 663 hit
파일1  20210417_222841.jpg (392.2 KB)

□약속시간에 늦을까 급하게 서남산주차장에 도착하니 잠시의 여유 ㅡㅡ
금세 여기저기에서 몰려오시는 오늘의 탐방객들 사이로 체온을 체크하고 참석 확인란에 서명을 한후 에너지 넘치시는 하명옥해설사님의 선창으로 화이팅을 외치고 먼 옛날 신라와의 만남을 위하여 출발~~

배동 석조여래입상(보물63호) 설명을 시작으로 삼릉과, 당당하고 힘차보이는 냉곡 석조여래좌상의 사라진 사연도 미스테리하지만 발견된 사연 또한 웃고프다(요즘식 표현).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바른듯 도톰한 붉은 입술로 미소를 머금은 마애관음보살상은 선생님의 설명처럼 어쩌면 입술을 저렇게 붉은 색(자연석)의 석질이 그렇게 딱 맞게 세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우연일까 필연(의도한) 일까?
선각육존불은 오랜 세월 탓으로 검은 물때일까(?) 이를 방지하기위해 바위 윗면에 빗물이 흘러 내리지 않게 파놓은 물길과 지붕덮게 흔적을 보니 먼 앞날을 내다본 예지력이 놀랍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못난이 선각여래좌상이 내려다 보고 계신다. 얼굴의 좌우 비대칭이 요즘의 성형미인들이 난무하는 세태에, 가장 서민적이며 지금의 우리 한민족을 닮은 친근하고 소박한  모습같다.
보물 666호인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현재의 화려한 불상모습 이지만, 불두를 찾아 복원하였는데 1963년 무지한 사람들로 인해 산산 조각난 불두를 또 다시 복원하게 되었다니 참으로 가슴아픈 사연이다. 하기야 경주 남산의 불탑, 불상 어느하나 사연 없는게 있을까마는, 선생님께서 보여 주시는  석조여래좌상 흑백사진(1915년)의 불상 옆에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처럼 앉아있는 일본인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 불상의 이동경로가 마치 드라마의 한편 같다.(현재 국립중앙박물관전시) ㅡ1915년(일제 강점기) 조선물산공진대회 참가를 빌미로 남산을 떠남.

이제 정상으로 오르는 숨가쁜 등산길ㅡㅡ
키가 2cm만 더 컷으면 손을 바닦에 집지 않고도 산길 높은 턱을 오를 수 있는데라며 농을 하시는 선생님 ㅡ저도 표준키에 5cm 부족합니다.ㅎㅎ
더디어 전망좋은 바둑바위에서 100만 명이라는 어마 무시한 신라인들의 삶을 생각하며 내려다 본 지금의 벌판은 좀 초라한 모습이다. 심한 황사와 몇방울 떨어지는 비 탓일까ㅡ
그러나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의 수고와 노력이 오늘 더욱 값지고 보람된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남산연구소 직원분들께 큰 박수를 보넵니다.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남산에서 두번째로 큰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지금은 접근이 어려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니 안타깝다.
이곳 상사바위에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 되어야하는데, 열정넘치는 선생님과 열공을 원하는 참가자분들 때문에 선방곡으로 하산하면서도 계속되어 예정시간보다 50여분이 초과되었지만, 몇분이 모여 국수집에서 국수와 막걸리로 마무리를ㅡㅡ부산에서 오신분 국수 막걸리 감사합니다 ^.^오릉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최악의 황사에 걱정입니다.
탐방 내내 부인의 손을 잡고 다니시는(마치 신부 입장식 같은 모습ㅡ죄송) 분, 불상 앞에서는 늘 참배하시든 부부 ㅡ모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경주남산연구소  04/19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소정의 감사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남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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